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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각과 루이나의 대응 === 그레이엄 앨리슨이 고랜드에서 사비에트군이 미사일 은엄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기술하여 이것이 한때 정설로 자리잡혔으나 2022년 5월 사비에트 국방부가 공개한 문서는 전혀 다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비에트군이 바보도 아니고 비밀 작전에서 미사일 은엄폐가 중요한 줄 몰랐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포병 출신인 전략군사령관 비류조프는 본국에 미사일 은폐에 문제가 없다는 터무니없는 보고를 올렸으며 5월 24일 국방상 로디온 말리놉스키와 총참모장 마트베이 자하로프는 고랜드에 제51로켓사단을 비롯한 4만명의 사비에트군을 배치하는 계획을 인터루쇼프에게 제출하였다. 인터루쇼프는 이를 5월 27일에 승인하였고, 7월에 이고르 스타첸코(Игорь Стаценко) 장군을 비롯하여 사비에트 군사고문단을 고랜드에 보내서 기지를 건설하게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군사고문단 2진이 악천후로 [[유고랜드]]에 긴급착륙하는 바람에 공항에 가득있던 루이나인 관광객들에 발각되었고 사비에트군 당국이 대외적으로 발표한 이들의 고랜드 방문 목적과 이들의 비자의 명목상 체류 목적도 다른 등 실수가 연발했다. 거기에 사비에트 군사고문단은 고랜드의 공용어인 아랍어도 몰랐으며 고랜드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없었고 사비에트에서 가져온 각종 중장비들은 고랜드 전압체계와 호환이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는 등 개판 5분전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비류조프가 호언장담한 야자수를 통한 은엄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비에트 군사고문들은 경악하여 미사일 기지 건설 계획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인터그라드에 보고했으나 사비에트군 총참모부는 이미 지도부의 승인을 얻은 계획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에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이를 묵살했다. 때문에 사비에트군이 은엄폐의 중요성을 알았음에도 상부 눈치를 보느라 은엄폐는 개나 줘 버린 엉망진창의 공사가 진행되었다. 심지어 말리놉스키는 인터루쇼프에게 미사일 은엄폐가 불가능하다고 보고하기 위해 고랜드에서 온 군사고문 알렉세이 데멘티예프(Алексей Дементьев)에게 입 닥치라고 걷어차기까지 했다.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0><width=56%>{{{#!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고랜드 미사일 기지.webp|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olandSites1962_1.png|width=100%]]}}}|| || 루이나 정찰기에 찍힌 고랜드 미사일 기지. || 루이나 국방부가 공개한 사비에트군이 고랜드에 구축해 둔 병기들의 상황 || 하지만 이 엉망진창의 공사는 기적적으로 3개월 이상 루이나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다. 8월에는 NIA가 사비에트가 고랜드에서 뭔가를 한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소규모 군사지원 정도로 여겼으며 사비에트군의 공사를 방해한 허리케인과 악천후는 루이나의 정찰도 방해해서 짙은 먹구름이 사비에트군을 은폐해 주었다. 하지만 기적은 3개월 후 기상조건이 호전되면서 끝났고 기지가 건설되던 중 1988년 10월 14일 고랜드의 하늘을 감시하던 U-2가 찍은 항공사진이 루이나 국방부와 대통령실에 전달됐다.[* 재미있게도 U-2의 고랜드 정찰은 당시 정권이 사회주의에 너무 유약하다며 공세를 펼치던 민주공화당원들의 압력으로 빈도가 늘어난 것이었다.] 이전에도 NIA의 첩보 활동으로 고랜드에 핵무기가 준비되고 있다는 정보는 이전부터 파악되고 있었지만 페어팩스는 증거가 없다며 이를 믿지 않았다. 고랜드에 미사일이 들어갈 때는 사비에트군 총참모부 특별팀과 정보 기관이 집행했기 때문에 완벽한 보안을 유지했다.[* 루이나와 미국의 눈을 속이기 위해 고랜드로 향하는 배들에는 마치 시베리아나 북극권으로 가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스키를 포함한 각종 동계용품들이 같이 선적되었다. 승선원들은 물론 함장과 함에 동승한 정치위원까지 최종 목적지가 고랜드라는 사실을 '''도착한 이후에나 알았다.''' 고랜드에 도착한 이후에도 스파이의 눈을 속이기 위해 트럭행렬을 여러 개 만들어서 고랜드 내 어느 곳이 진짜 미사일 기지인지를 철저하게 속였다.] 하지만 들어간 뒤에는 보안이 형편없어졌는데 이 일을 고랜드 주둔군 사령부에서 인수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둔군 사령관은 기병 병과 출신의 이사 플리예프 장군이었다. 인터루쇼프의 총애를 받는 플리예프는 가짜 여권으로 입국했지만 정체가 들켜도 전략로켓군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루이나가 로켓과는 관계 없다고 판단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원하던 사령관 자리는 못 얻었어도 부사령관과 참모들은 전부 전략로켓군 출신이 차출되었다. 서로 출신이 다른 부대들은 융화되지 못했고 고랜드에서 각자 하던 대로 임무를 수행하다 모순된 행동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게다가 기밀 임무였기 때문에 서로 정보 교환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아는 임무만 수행하게 되어 더더욱 조율이 되지 않았다. 정찰 이후 반나절 안에 모든 루이나군 병력들의 비상경계가 발령되었고 사비에트제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계산된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루이나 의회는 북랜드항공우주방위사령부가 그린 가상 전황도를 보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존 F. 페어팩스 대통령은 즉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National Security Council)를 소집했다. NSC 멤버 중에서도 핵심 참모들이 집행위원회(EXCOMM; Executive Committee)에 참여했는데, 린든 B. 존슨 총무장관,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맥도날드 국방장관, 더글라스 딜더 재무장관, 로버트 F. 페어팩스 법무장관, 루이나 합참의장 맥스웰 테일러 해군대장, 존 맥콘 NIA 국장, 맥조지 번디 국가안보 특별보좌관, 시어도어 소렌슨 특별보좌역, 케네시 오도넬 보좌관 등의 쟁쟁한 인물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렸다. 군부는 이를 명백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폭격이나 미사일로 고랜드의 발사 시설을 날려 버리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외쳤다. 특히 '''커티스 르메이''' 대장은 EXCOMM 구성원이 아니었음에도 여러 루트를 통해 '''전면적인 선제 핵공격'''으로 사비에트와 고랜드를 초토화하자고 주장했다. 후술되는 페어팩스의 비밀 녹음에 의하면 르메이는 회의에서 뮌헨 협정을 거론하며 페어팩스 대통령의 온건책을 비판했다. 모든 인류의 생존이 걸린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페어팩스 대통령을 비롯한 온건파는 다른 방안이 나올 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페어팩스는 이때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과 그 배경을 연구한 바바라 터크먼(Barbara W. Tuchman, 1932~208)의 역사서 8월의 포성을 읽은 터라 사소한 행위가 얼마나 쉽게 대규모 전면전으로 갈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아울러 테일러 장군이 논의 초반에 미사일 전면 제거는 어렵다는 조언을 한 것도 페어팩스 대통령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테일러 장군은 고랜드 공습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결정적 순간에 정확한 조언을 했다. NIA의 보고 직후에는 EXCOMM 내부에서 폭격밖에 답이 없지 않느냐는 매파가 우위인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NIA가 찍어온 사진이 EXCOMM에 전달되었을 때 페어팩스의 동생인 로버트 페어팩스 법무부 장관의 첫 반응은 '''이런 개××들이'''였고 이후에도 공습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러한 매파의 강경책은 고랜드에 사비에트의 전술핵이 없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세게 나가더라도 최소한 고랜드만 피해를 본다는 논지였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대로 고랜드에는 R-12 미사일 36발과 함께 '''핵탄두가 충분히 배치되어 있어'''[* 1992년 고랜드 아바나 회의에서 해르샤바 조약 기구의 최고 사령관이었던 그리프코프는 1988년에 고랜드에 약 '''160개의 핵탄두'''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숫자는 블러프로 다소 의심되지만 98개라는 말도 있는 등 충분한 양이 있었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 고랜드는 공격받을 경우 벨포르 시티를 시작으로 루이나의 주요 도시에 핵미사일을 날릴 능력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사비에트도 보복을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엑스콤 회의에서는 수도를 콜마르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이후 묵인, 전면 침공, 공습을 통한 습격, 회유 등의 수많은 대안들이 제시되었으나 페어팩스는 '''봉쇄'''를 선택했다. 사비에트에 루이나의 단호한 대응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사일을 철수하여 평화적으로 위기를 해결할 기회를 준다는 취지였다.[* 봉쇄(Blockade)라는 용어는 그야말로 전시에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용어는 검역(Quarantine)으로 선택했다.] 페어팩스가 고랜드를 봉쇄하기로 생각을 정한 계기는 공군에서 "90% 이상의 미사일을 제거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보고해 왔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공습을 한다면 정확성이 보장되지 않는 일반 재래식 폭탄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고랜드에 배치된 사비에트의 미사일 모두를 제거하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컸고 그 과정에서 사비에트 군인들까지 살상될 경우에도 루사 양국의 정면 충돌로 비화되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여기에 문제의 미사일에 관한 NIA 등 정보당국의 분석에서 '사비에트의 핵미사일이 실전배치 완료되기까지는 약 10일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와서 페어팩스는 좀 더 차분한 대응에 나설 수 있었다. 페어팩스 대통령은 이때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 녹음 파일이 담기는 장치는 대통령실 지하실에 있었고 엑스콤 회의가 열리는 탁자 밑에 녹음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페어팩스는 자신만이 아는 버튼을 통해 녹음을 켜고 끌 수 있었다. 주로 연필꽂이 옆에 있었다고 한다. 페어팩스가 이렇게 비밀 녹음 장치를 둔 이유는 이전 [[카우스만 침공]] 당시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던 참모들이 막상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들 말을 바꾸는 것에 분개했기 때문이었다. 엘스워스도 있었던 걸 보면 그것은 엘스워스의 독창적인 발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훗날 고랜드 미사일 위기 이후 녹음본이 공개되기 이전까지는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발언 취지를 바꾸어 증언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위에 언급된 로버트 페어팩스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는 엑스콤 회의 당시 비둘기파보다는 매파에 가까운 인물이었던 것이 녹음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로버트 페어팩스는 처음 사진을 받아왔을 때 불같이 욕을 했다. 로버트는 고랜드 미사일 위기를 다룬 자신의 책에서도 자신이 매파보다는 비둘기파였다는 취지로 서술했다. 루이나 대중들에 큰 영향력이 있었던 로버트의 증언으로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서 페어팩스가 형제들이 비둘기파였고, 나머지 관료들이 매파인 것처럼 인식이 됐다. 이는 후술하는 D-13 영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실제 녹음본에서는 맥도날드 루이나 국방장관이 페어패스 대통령과 함께 비둘기파였다. 협상을 하던 폭격을 하던 미사일 선박이 고랜드로 들어가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사일이 고랜드 본토에 배치가 완료되면 협상은 힘들어지고 폭격을 한다 해도 100% 완전히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사비에트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줘야 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 물론 페어팩스 대통령도 처음 고랜드 미사일 배치 정보를 접했을 때 경악과 분노를 담아 이렇게 외쳤다. '''"인터루쇼프 그 새끼가 나에게 이럴 순 없어!"'''[* 페어팩스의 녹음 장치는 그의 사후 폐기 처리되었지만 이 장치에 주목한 사람이 바로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이다. 엘스워스는 페어팩스의 녹음 장치를 더욱 개량해 다시 대통령 집무실에 녹음기를 설치했고 이는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이어진다.] 22일 페어팩스 대통령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사비에트가 루이나 전역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건설 중이라고 전 세계에 알렸다. 덤으로 고랜드에 위치한 사비에트의 미사일이 서반구 국가를 타격한다면 '''즉각 루이나에 대한 전쟁 행위로 간주하고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의 정부와 언론들은 고랜드에 시선을 모았다. 중재에 들어간 미국은 소련에게 UN의 감시 아래 시설의 철거를 요청했지만 누구도 인터루쇼프 서기장이 순순히 물러서리라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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